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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일상/전시회] 불멸의 화가 Ⅱ 반 고흐 in 파리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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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서 파리 속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단 10년의 짧은 화가 생애 동안 900여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살아생전 단 한 작품만이 팔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사후에 이르러서야 불멸의 화가로 남게 되었다. 이런 빈센트의 작품 수 십점이 한국을 찾았다. 5년 만이었다.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수 십점이 선보이며 10년에 걸친 전시회의 서막이 열렸다. 당시 나는 수능을 마친 고3 혹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신분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의 작품 여러 점이 한국땅을 찾았다는 것에 마냥 설렜다. 그러나 관람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끝나는 날까지 가보지 못한채 빈센트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1시간 반을 달려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중국발 황사로 시계가 좁고, 밤에 예고된 비로 인해서 우중충한 날씨도 나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 멀리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의 전당'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실제 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빈센트 전시가 열리는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은 입구와 가까이 있어서 깊숙하게 들어가보지 않아 예술의 전당을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예상했던 웅장함 대신 세련미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뭔가 위에서 봐야 하는 걸까?





왼쪽으로 알고 들어갔다가 맞은편에 있다는 안내를 접하고 다시 이동하는 중에 찍어보았다. 온통 반 고흐전으로 도배된 전시회장 겉모습.





이것이 성인 15,000원짜리 입장권이다. 오후 6시 이후에는 2천원 할인도 해준다. 사실,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미술에 대해, 적어도 빈센트에 대해서도 아는게 별로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조금 비싼 금액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훨씬 비싼 작품을 짧은 시간이나마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렇게 미술을, 예술을 알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비싼 금액은 아닐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오디오 가이드를 다운로드 받아서 작품을 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자 했다. 오디오 가이드는 3,000원에 기기와 함께 대여할 수 있으며, 대여시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나는 사전에 어플 '아뜰리에'를 통하면 유료 다운로드로 스마트폰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기기 대여와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고 코드를 받아 다운로드 하였다.





반 고흐전의 입구와 출구의 모습이다. 출구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는 곳과 이어져 있어서 나올 때 반납이 용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전시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작품 사진은 이번 반 고흐전 공식 홈페이지(http://www.vangogh2.com) 자료로 대체한다.





캔버스에 유화로 덕지덕지 그려놓은 그림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특히나 구름 부분의 심한 덧칠로 흘러가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2차원으로 압축된 '사진'만 가지고서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받지 못할 것이다.



87년 7월 중순 ~ 8월에 그렸다는 좌측의 자화상도 실제로 보면 훨씬 입체적인 느낌과 함께 어떤 물감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도에 따라서 빛이 약간씩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빈센트 반 고흐전에서 가장 와닿았던 작품이다. '사진'과 '그림'이 얼마나 다른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실물을 열심히 보러 다녀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전시회였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빈센트는 살아생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작품을 파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채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1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아닌 싸구려 안료의 사용이었다. 오른쪽은 1908년에 사진으로 찍어둔 빈센트의 자화상인데, 오늘날의 모습과 배경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당시 커피 한잔이 0.25프랑이었던데 반해 비싼 물감은 9프랑까지도 했기 때문에 재정능력이 떨어졌던 빈센트는 일부 그림에서 싸구려 물감을 사용해야만 했고, 이것의 발색, 변형이 심하여 처음과 다른 색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따름이다.



가난한 빈센트는 또한 캔버스를 재활용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따로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냥 위에 다른 그림으로 덧칠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엑스선 촬영을 통하여 밝혀낸 사실인데, 현대 기술이 참 많이 발전했으며 덕분에 우리는 눈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그림에 나온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는 한 때 빈센트의 연인이기도 했는데, 섬세한 붓질로 얼굴의 곡선을 빚어간 기법은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고 오로지 세가토리의 초상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빈센트도 사랑을 아는 낭만적인 남자였나보다.



빈센트의 작품 중에는 엑스선 촬영 결과 밑그림으로 누드화가 그려진 것들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풍조가 누드화를 잘 그리는 사람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빈센트는 누드화를 그리는데는 약해서 자신의 그림이 잘 안 팔린다고 생각하여, 당시 유명했던 화실에 들어가 수업을 듣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빈센트의 모습에서 타고난 천재성 외에도 부단한 노력과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었으며, 나 자신의 모습도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회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도슨트는 평일 기준으로 오전 10시 30분(어린이 대상), 11시, 오후 1시, 1시 30분(어린이 대상), 3시, 5시, 6시 30분 총 7회 안내가 이루어진다. 나도 오후 3시에 맞춰서 가보려고 했으나 늦어서 3시 40분쯤 입장하여 5시 20분쯤 관람을 마치고 나가기가 아쉬워 처음부분으로 돌아가던 중 5시 타임의 도슨트를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이 안내에서 들었던 것 중 가장 머릿 속에 남았던 것은 이 포스팅 전반에 깔려있다. 바로 '빈센트'다. 우리는 보통 빈센트 반 고흐의 성(姓)인 '반 고흐' 혹은 '고흐'라고 부르는데, 파리 사람들은 이 발음이 힘들어서 비슷하게 불렀는데, 그 발음이 하필이면 '요강'을 뜻하는 말과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했고, 몇 개 되지 않는 작품 서명도 'Vincent'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작품 감상을 마치고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포토존이라고 따로 표기해놓은 것은 없었으나 내부 촬영이 금지된 상황에서 빈센트의 자화상과 함께 찍을 수 있는 곳은 이곳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혼자가서 저 앞에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미술관 입구에서 셀카 인증샷 한 장 정도는 남길 수 있었다.





전시장 밖 한 편에서는 빈센트 작품이 담긴 물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따로 구경은 해보지 않아서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전시 주관사는 온라인 아트샵(http://hkartshop.kr)도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구경해보길 바란다. 




2시간여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작품을 보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정적인 이동이었기 때문에 다리가 좀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예'자도 잘 모르면서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 귀동냥 등을 통해 작품의 시각을 좀 더 넓혔고, '사진'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살아있는 '그림'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5년 뒤, 반 고흐전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전시회가 열릴 그날을 기대해본다.



즐거웠다면, 그걸로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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