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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책/리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김정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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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 회 한 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솔직하다. 전작 '노는만큼 성공한다'를 통해 처음 이름을 듣게 된 김정운 교수는 '놀지 못하는 것은 창의력을 말살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것'이라며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일만하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실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이하 '나는 아내와…') 역시 책 제목부터 자극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다. 독일 유학을 했지만 한국인 아내를 둔 저자는 어느 아내가 들어도 후회할 만한 제목을 사용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목이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판매고로 까지 이어지는 '마케팅'의 한 부분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챕터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후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주 가끔….'(42 page)이란 표현을 통하여 이 책을 읽어 볼 아내에게 변명의 여지를 만들어 놓고 있다. 


'나는 아내와…'에서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과거, 현재의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고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가장으로서, 남자로서의 진솔한 고뇌가 담긴 책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학문적 근거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중년은 아니지만 20대의 나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로서 공감이 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는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도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인해 닳은 건

사실 두 길이 거의 똑같았지만,


그리고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은 길>

37 page



평생을 함께할 아내와의 결혼마저 후회되는 세상, 우리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선택이 얼마나 될까.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한 이들에 대한 인터뷰에서 한결같은 대답이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62 page)



20세기는 아버지의 세대였다. 블루 칼라로 대변되는 남성 노동자들이 힘들게 벌어오는 대가는 가정을 유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는 이제 더이상 아버지의 세대가 아니다. 위기의 시대, 오늘을 이끌어 가는 것은 아줌마다. 엄마다. 21세기는 어머니의 세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자는 자신의 공간을 갖길 원한다. 심리적 안정은 그 공간의 넓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공간은 좁디좁은 책상 한 칸에 불과하다. 또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단지 사회적 증명이 아닌 본질로서의 나를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를 개발함으로써 답변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교복같은 독일 성악가들의 양복을 입고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으며 본질적인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창의적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그래서 재미와 창의성은 심리학적으로 동의어다. (153 page)



호아킴 데 포사다 저 '마시멜로 이야기'는 '다음의 영광'을 이야기한 아주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스탠포드 대학의 유명한 실험을 바탕으로 '마시멜로'를 지금 당장 먹어치우지 않고 아껴두면 나중에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마시멜로는 계속 저축하다보면 크게 될 것임은 분명한데, 그럼 '과연 이 저축의 끝은 어디인가?'하는 점이다. 결국 저축이라는 것이 '소비'를 대비하여 하는 것인데, 이 책은 결코 그 점을 명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의 저자는 이런 점에서 나의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였다. 지금 참고 일하는 것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지식기반사회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재미있게 노는' 환경에서 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재미있게 즐기면서 사는 것이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고민하지 말고, 즐기자. 재밌게!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89.1%의 사람들이 '자신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74.6%가 '남들은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보고 있다. 또 조사 대상의 64.3%가 '자신은 법을 잘 지킨다'고 답한데 비해, '다른 사람도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이 지키지 않아서'라는 답이 25.1%로 가장 많았다. 이런 황당한 궤변으로 우리는 아주 자주 스스로를 변호한다. (213 page)



저자는 '관계'에 있어서 정서 공유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들은 감정 절제가 우선시 되다보니까 제대로 된 정서 공유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보아도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통하여 이미 남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영향의 한 몫인지 내 경우도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아는 사람 중에 덩치가 꽤나 큰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보기와 달리 손재주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감정이 풍부하여 표현도 잘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도 쉽게 흘리곤 한다고 한다. 대인관계가 매우 좋았던 그 친구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으니, 그것이 다 '눈물'에서 비롯된 감정 표현의 능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심리학을 30년 가까이 전공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나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성격심리학이론들도 한결같이 주장한다. 사람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고. (158 page)



나는 내 모난 성격을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란걸,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다. 친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말'이 너무나도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바꾸고 보다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30년 이상 심리학을 연구한 저자가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나의 그간의 노력들이-그 결과 얻은 결론이- 헛되지만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까진 모르겠지만, 쉽게 바뀌지 않을 '나'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변화시켜보고자 한다. 조급해 하지 말고.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268~270 page)



혹자는 말한다. "그럼 65세까진 놀아도 되겠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게 그게 아니라는 건 다- 안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 된다. '우리'라는 경계선을 넘어오는 순간부터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서구인들에게는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성립된다면, 한국인들은 '우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난 후에 비로소 '나'와 '너'가 성립된다는 이야기다. (227 page)



"내 것에 대한 강한 애착. 남의 것에 대한 무관심." 내 페이스북에 썼던 말이다.

나는 내 성격에 대한 고찰을 즐긴다. 그 중 하나로 '나'와 '남'을 구별하면서 울타리를 만든다. 그 울타리 범위 내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는 보호하려 하고 관심을 갖고 잘 해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에도 해당된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건 나의 무한한 관심 밖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짓'거리는 나만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있다고 해도 소수, 일부. 하지만 저자는 이를 서구인과 다른 한국인으로 보다 일반화 시켰다. '우리'로서 존재하는 한국인. 

그래,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한 가지 더. 맥시마이저와 새티스파이저의 '황야의 결투' 편에 보면 저자는 독일의 원칙론과 한국의 상황론은 합의를 통하여 공존하므로 무엇이 더 좋다고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맞다. 선진화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조건 서양이 옳고 동양이 그른 법은 없다.



결혼식장 입구나 놀이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거지들은 대단한 심리학자들이다. '기분 좋은 사람이 더 쉽게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원리를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21 page)



끝으로, 저자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기본 욕구를 '감탄'에서 찾았다. 식욕이나 성욕은 모든 동물이 살아가기 위해 갖고 있는 욕구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유일함은 아닌 것이다. 아기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행동에 '감탄'을 하는 것에 따라 다음 행동에 대한 동기 유발로 성장해간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이유도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감탄하기 위한 것이며, 여자들이 오래 사는 이유도 수다 속에 서로의 말에 감탄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삶의 이유를 감탄하기 위함이라고 매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 감탄 했다. 그리고 난 ㅇㅣ ㄱㅏㅁㅌㅏㄴ을 느끼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게 아닌가 또 한 번 감탄 했다.



에필로그.

김정운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캠핑카' 얘기를 꺼냈다. 잘 수 있고, 음식도 해먹고, 화장실까지 있는 캠핑카를 타고 밖으로 나가 아름 다운 풍경을 벗삼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이 꿈이란다. 아, 그래서 나도 잊고 지낸 오랜 꿈이 떠올랐다. '캠핑카'를 타고 출퇴근 하는 모습. 왜 그런 모습을 꿈 꿨을까? 혹시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즐거웠다면, 그걸로 O.K






손가락 꾸욱~! 글쓴이에게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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